Andrew Salmon
영국과 아일랜드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기념 행진을 하고 있다.

“감개무량하다. 마음이 심하게 동요되고 있다.” 235m 높이 언덕의 산비탈을 올려다 보며 해리 호크스워스(영국인, 83세)가 말했다. 이 언덕은 한국과 북한의 경계인 비무장지대에서 남쪽으로 불과 수마일 떨어져 있는 시골 마을에 위치해 있다. 그는 “미안하지만 마음이 벅차 올라서 차마 설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호크스워스가 이렇게 감개무량해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951년 4월 그의 부대는 1945년 베를린 함락 이래 최대 규모로 꼽히는 중공군 공세에서 전멸했다.

한국군사사연구소에서 ‘아마게돈 노스 오브 서울(Armageddon North of Seoul)’이라고 명명한 중국-북한 합작 대공세는 한국전쟁에서 한방에 승리하기 위해 계획된 것으로, 중공군 백만명 중 3분의 일을 전선에 투입한 중공군 공격이다.

중공군의 목표는 영국군 진지를 점령하고, 미군 부대의 동쪽으로 잠입하며, 한국에 배치된 UN군을 싹쓸어 버려 5월1일 노동절까지 서울을 함락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전쟁 승리 작전이었다. 하지만 영국군과 벨기에군으로 구성된 글로스터 연대(보병 29여단)이 전략적 입지인 임진강 유역에 배치돼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작전이었다.

 

 

Andrew Salmon for The Wall Street Journal
글로스터 여단의 최후 전투지에 마련된 기념 공원.

7 대 1이라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글로스터 4개 부대는 중국의 육군 24개 대대로 이루어진 제63보병부대를 3일 동안 막아냈다. 이는 유엔연합군이 확대 군사 활동선까지 후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여주었다.

호크스워스의 부대가 없었다면 후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덕을 통과하는 핵심 경로를 지키고 있던 글로스터는 적군에 포위됐다. 살아남은 군인들은 4월 24일 언덕235에서 다시 뭉쳐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탄환이 바닥날 때까지 싸우다가 적군이 들끓는 시골 마을을 통과해 탈출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부대는 전멸했다. 군인 622명이 사살되거나 포로로 붙잡혔다. 호크스워스는 중국의 정치 수용서에서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글로스터’ 최후의 전투는 전설이 됐다.

글로스터의 전투는 그리스군의 전설적인 최후 전투인 테르모필레 전투와 비교됐다. 유엔군 사령관인 미국의 제임스 반 플리트 장군은 이 전투를 “현대전에서 용감한 부대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라며 극찬했다.

 

 

격전에서 살아남은 글로스터 대원들이 23일(화요일) 전장을 다시 찾았다. 영연방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방문의 일환이었다. 한국에서 후원하는 이 연례 행사는 올해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2013년은 총성을 잠재운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235고지의 산기슭에 위치한 글로스터의 최후 전투 현장에는 현재 기념 공원이 들어서 있다.

기념식이 열린 날은 구름이 잔뜩 껴 어둡고 우울했다. 대부분 80대로 접어든 영국과 아일랜드 참전용사들이 기념식에 참석해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기념비에 화환이 놓여진 뒤 참전용사들이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영국 기업들이 기부한 장학금이다.

가벼운 빗줄기 속에서 백파이프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전용사들은 마지막 전투의 중심지였던 골짜기에 화환을 놓았다. 이 골짜기는 전투의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점령됐다. 글리스터 여단은 피투성이가 된 상황에서도 적군 수천 명과 끝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헨리 오케인(83)은 이 과정에서 포로로 붙잡혔다.

그는 “언덕에서 다리에 총을 맞은 상황에서도 가까스로 내려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탱크에 기어올라갔다. 하지만 북새통에서 갑자기 탱크가 방향을 트는 바람에 오케인은 내동댕이쳐졌다. “중공군에게 붙잡혔는데 그 때 우리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처형을 당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그와 다른 포로들은 마지막 남은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포로 수용소에 갇혔다.

보병 29여단의 진지는 지금까지도 요새 지역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돼 있고 북한의 핵무기 위협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전쟁에서 글로스터의 희생은 과연 가치있는 것이었을까?

호크스워스는 “한국인들에게는 가치있는 희생이었다. 1951년 한국은 초토화된 상태였는데 이들이 일군 업적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고 말했다.

호크스워스는 기념 공원을 둘러봤다. 그곳에서 한국 학생들은 참전용사들과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한국 방문 기간 동안 참전용사들은 마치 유명인사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는 “한국인들은 굉장히 친절하며 우리 해외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이곳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